행복해지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분명,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하니까.
…
터프 위 쪽 잔디가 깔려있는 교정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메카 우마무스메 프로젝트의 큰 틀은 이미 완성된 지 오래. 이제는 더 많은 데이터로 더욱 정교한 작업과 발전을 일구어내는 시기이다 보니- 이러니 저러니 해도, 담당 우마무스메도 없는 저는 한가롭다. 뭐, 담당 우마무스메만 없을 뿐이지 트레이너로서 일은 제대로 하는 데다, 오히려 학원 관계자들과 이래저래 친분이 생겨 버렸다 보니 그쪽 일을 도맡는 게 더 번거롭지만 말이야… 별생각 없이 종이 위에 목탄을 대고 눈에 담기는 교정의 풍경을 그리고 있자면- 이내 찰칵,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게 된다.
“아, 스미지상! 여기서 그림 그리시고 있는 거에요? 박사님은요?”
“아아, 이번에는 다이브 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참이라는 거 같아서 말이야… 나 같이 우중충한 사람이 같이 다니면 애들이 겁먹을까나, 싶어서…”
“에이, 스미지상 이미 박사님이랑 같이 다니는 걸로는 꽤 유명하다고요? 딱히 무서운 인상도 아니지 싶은데… 오히려 저야말로 키가 커서 그런지 전에 울타리 문제로 소리 지른 것 때문인지 뭔가 무섭다는 소문이 돌아서 곤란해요…”
“…그보다, 김렛은?”
“잠깐 외출이요. 수업 끝나고 나면 파인네랑 유명한 라멘집에 약속이 잡혀 있다고 해서, 미팅 시간을 좀 미루기로 했어요. 대신 오늘은 병합 트레이닝에 야간 트레이닝도 할 거지만…”
“그런가… 사진은?”
“그냥 찍고 있어요. 좋은 사진 한 장은 건질 때까지요. …김렛이 좋아할 만한 셔터 찬스가 있으면 좋을 텐데.”
찰칵, 찰칵 거리는 셔터 소리와 목탄을 종이 위에 그어나가는 소리는 한참이나 멈추지 않았다. 왁자지껄하던 목소리가 잦아들고, 곧이어 트레이닝을 하러 자리를 잡는 우마무스메들이 드문드문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즈음에 스미지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꽤나 그럴듯한 목탄화가 거뭇거뭇한 자국이 번진 손에 자랑스래 들려있었다.
…
물기가 아직 남은 손을 치마 자락에 대강 문질러 닦으며 스미지는 ‘과일 사탕’ 이라고 쓰인 약간 촌스러운 봉지의 포장을 힘껏 뜯었다. 심플한 포장으로 싸여 있는 사탕들이 병 안으로 와르르 굴러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뚜껑을 닫고 다시 사탕 단지를 책상 저 편에 밀어둔 스미지는 봉지를 만지작거렸다. 언제나 사탕이 떨어질 때가 되면 제가 직접 사서 채워놓고 있지만… 역시 들키고 싶진 않다.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게, 그냥 영원히 내가 사탕 채워놓는 건 모른 채로 먹어주기만 하셨으면 좋겠어-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자면 톡, 등에 닿는 손길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스미지군, 멍 때리고 있었어? 아핫, 놀라게 한 거 같아서 미안한걸…”
“바, 박사님?! 언제 오셨어요?!”
“어라, 정말로 못 들었나 보네… 생각에 빠져 있는 스미지군이라니, 꽤나 진귀한 경험인걸. 안 그래도 방금 왔어. 책상 앞에서 멍하니 있길래. 그보다 손에 들고 있는 건 뭐야?”
“아, 아아! 이거요? 이건, 오늘 새로 그린 건데요… 박사님이 오늘 터프에 나와계시는 동안, 한 장 그려봤어요. 요즘은 풍경화에도 꽤 힘을 쏟는 중이라서요…”
“우와, 역시 스미지군은 언제나 그림이 대단하네…! 이 정도면 돈 받고 팔아도 되는 거 아냐? 왜, 저번에 메카 우마 프로젝트 참여자 초상화 그려준 것도 엄청 호평이었는걸.”
“에이, 그 정도는… 아아, 그보다 저쪽 테이블에 이번에 온 택배 올려다 놨으니까 얼른 가보세요!”
“아, 고마워! 드디어 왔구나~ 이 부품만 있으면 사티의 구동 모델이 한층 더…-”
스미지는 그제야 안심한 듯 서류 뒤에 급히 숨겨뒀던 사탕 비닐을 잘 접어 주머니 깊이 찔러 넣었다. 이럴때만큼은 겉옷을 입지 않아 수납공간이 부족한 제 옷차림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라고 할까, 그림을 그리다 보면 긴 옷은 쉽게 더러워지기도 하니까 웬만하면 귀찮아서라도 안 입지만. 이내 치마의 형태가 부자연스럽지 않게 제대로 갈무리하고 나선, 그 웃는 얼굴을 보기 위해 몸을 돌린다. 그제야 절 발견하고 활짝 웃더니 이내 저는 잘 알지도 못하는 부품을 들어 올리며 신난 듯 설명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느껴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올 뿐이지.
저는 그 웃음에 구원받았다.
화사한 웃음이 좋았다. 웃는 얼굴이 따스했다. 자신의 일에 진심으로 열중하는 모습이 순수했다. 그리고 그 모든 끝에 마침내 쟁취한 웃음이 태양같이 밝았다. 어둠으로 기어 들어가며 엉망진창이 된 몸과 마음에 한 줄기 태양빛이 비췄다.
손으로 잡으려고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발악이 먹혀들어갔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지만. 손을 잡혀 나온 태양 아래는 따스했다. 세상은 더 없는 색채를 품고 있었고, …그것은 빌어먹게도 따스하고, 기분 좋은 일이어서.
그래, 지금도 행복해서 견딜 수가 없다. 매일 점심마다 교정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것도, 그러다가 조금 일찍 연구실로 들어가 사탕을 채워놓는 것도, …이렇게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활짝 웃는 당신을 보는 것도 이제는 그저 행복의 하나. 매일의 소소한, 전에는 절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행복.
그렇기에, 결심했다. 오래 전에, 당신이 나의 손을 잡고서 그 태양 아래로 끌고 와 주었을 때 결심했었다.
“박사님.”
“응? 무슨 일 있어?”
“…아뇨, 저는… 박사님이 좋아하는 거라면 뭐든 좋다고요.”
“…아, 아아!! 그, 그래?! 그러면, 좀 더 마음에 드는 이 쪽으로 할까나… 아, 스, 스미지군 고르는 거 도와줘서 고마워!!”
“네에.”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고 곤두섰던 꼬리를 손으로 누르면서도 꼬리가 살랑거리는 것을 숨길 생각이 없는 것은 저명하다 보니- 그 모습에 웃음이 또 한 번 새어 나온다. 이것만큼은 용서해 주세요. …역시 전 당신이 정말로 좋은 걸요. …그러니까.
이걸 분명, 말하진 못하겠지만.
…박사님, 전-
박사님이 행복할 수 있다면, 정말로 뭐든 할 수 있어요.
범법이라도, 누군가를 희생해야 한다고 해도. 그게 설령 저라고 해도. 저는 아무 상관없어요.
저는, 그때 박사님의 그 웃는 얼굴을 봤을 때부터 계속 생각했어요.
…박사님의 웃는 얼굴, 그 하나만 지킬 수 있다면…
…그러니까 박사님,
잔뜩 웃어주세요. 행복해주세요. 행복만을 위해 살아가 주세요.
저는,
…어쩔 수 없이 ‘트레이너’ 라서,
담당 우마무스메의 행복이, 저의 행복이거든요.
…
나는,
당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설령 그 행복에 내가 없을지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분명, 그게-
그녀의, 그리고 나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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