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다 됐다. 어때?”
“호오, 이건…! 아아, 각별하군…! 아아, 역시 너는…큭큭!”
“난 평소의 네 머리도 좋아하지만, 역시 댄스를 할 때면 얼굴을 칠 거 같으니까. 핀을 좀 엉망진창으로 쓴 게 걸리긴 하네… 지금이라도 머리망으로 고정할까?”
“아니… 지금이 딱 좋군.”
“그래? 그럼 다행이지만…아, 저기 가서 좀 확인해도 돼 이제. 격하게 움직여도 웬만하면 떨어지지 않을 거야.”
결이 좋은 머리카락을 핀 범벅으로 만든 게 미안하다가도, 본인이 몇 번이나 거울에 비추어 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머릿속에서 그런 고민 따위가 전부 날아가 버린다. 집안 대대로 모델 일을 하는데, 이런 지식조차 없으면 이상한 거지… 손재주는 둘째 치고서. 거울에 머리카락을 비추어 보며, 간혹 춤 동작에서 머리카락이 더는 거슬리지 않는지 오래간만에 그 나잇대의 학생처럼 행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선…엔젤은 생각에 잠겼다.
드로와에 참석하겠다고 한 것도, 옷을 직접 고르고 준비도 제 스스로 하는 모습도 좋았다. 어디까지나 자기는 도울 뿐인 어른이지, 학생들의 이벤트에 낄 생각도 없었다.
…문제가 딱 하나 있다면 머리카락일까.
기왕 참여하는 드로와트 이벤트인데 좀 더 꾸몄으면 했다. 평소의 모습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조금 스타일 변경을 하면 좋겠는데. 머리가 짧다고 해도 스타일링은 충분히 할 수 있고. 거기다 춤 연습을 하다 보면 머리카락이 얼굴을 쳐서 불편할 거 같은데.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끝에 결국 참지 못했다.
머리가 좀 더 길었으면 세츠나 선배처럼 아래로 묶었을 텐데 아쉽네. 뭐, 그래도 저것도 두상이 동글동글해서 귀여울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면, 곧 금새 보랏빛 드레스로 몸을 감싼 김렛이 한 곡 추시겠냐던가 말해와서.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팔을 당긴다. 몸을 밀착하고서 다리끼리 엉키지 않게 물러서고, 한 발은 또 마치 고의적으로 상대의 품을 침범하듯이 발을 들이고. 안대로 가려진 시선의 행방이 어디를 향하고 있을지 무심코 신경쓰이면서도, 그 열광적인 밝은 노란빛의 눈동자를 보면 그것에 탐닉하게 되다 보니 큰일이라는 생각밖엔 들지 않아. 젠장, 기왕 묵혀둔 그 아래에 대한 관심이 약간 돌기 시작했어. 네가 보여주기 전까지 나는 들추지 않을 거지만- 더 생각이 번지기 전에 조금 조급하게 잡아당긴다. 되려 균형이 깨져 몸이 휘청이자, 바닥으로 곧 곤두박질 칠 듯이 휘청이던 몸뚱이가 강한 손길에 의해 잡혀서-
…정신 차리니 단단히 제 등을 지탱하는 손길, 천장의 형광등과 웃음기를 띈 김렛의 얼굴과 마주했다.
“이런 이런… 천사를 자칭하는 자로서 기본적인 실수로군?”
“…누가 천사라는 거야… …됐어, 일어나게 어떻게 좀 잘…”
“큭큭…! 하, 하하하-!!”
“…너, 왜 웃… …설마 이거 못 일으켜 세우겠어?! 거짓말이지?! 아니 아니 이 말하는 도중에도 점점 팔에 힘 풀지 마?! 싫어 싫어 으아아아!!”
“…큭큭, 너는 정말이지…겁 많은 천사로군. 데이트에게 난폭하게 대할 거라고 생각한 건가? ”
“하아… 내 입장에선 너는 나보다 한참 작은 학생이라고? 새가슴인 우마무스메 배려 좀 해줘라…”
투덜거리는 소리가 잇새로 절로 새어 나왔다. 다시금 제대로 자리에 서면 또다시 발을 주춤거릴 정도로 몸을 밀착하고 목에 건 것을 당겨와서. 절로 허리를 굽힌다. 다시 저를 응시하는 금빛 눈동자에, 가린 그것이 향하는 시선의 행방에 질식해 버릴 거 같아. …나 참, 누가 시선이 버릇이 될 거 같다느니 하는 거야. 이 쪽이야말로 그 말을 제일 하고 싶다고. 가볍게 웃은 입에서 말이 나온다.
“나와 춤추어라. 그날 밤 모두의 시선을 빼앗을 기세로. 탐미하고, 취하고, 파괴해라! 그 미학을 드러내고, 무대의 위에 발을 디뎌라!! 새로운 뮤토스를 창조해낸다면- 하토르의 축복이라도 주도록 할까. 후후…기대하지, 나의 댄스 파트너.”
…하아.
치맛자락을 살랑이며 탈의실 쪽으로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기에 바빴다. 손에 쥐었던 크리바트를 놓으며 턱 끝을 손가락으로 스친 감각이 아주 오래도록 가시지 않을 것만 같았다.
결국엔 취하고 만 내 잘못이다. 만취해버려서 빠져든 제 죄다. 그치만 결국 저는 성격 나쁜 우마무스메라서, 호락호락하게 당해줄 생각은 없다.
기대해 두라고.
…
“자아, 다 됐어. 마지막으로 한번 체크… 응, 됐다. …전에 해 줬던 거랑 똑같아. 이번에야말로 격한 움직임에도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으니까.”
“아아, 고맙군. …정말이지 너의 손길은 각별하군… 크크…!”
마지막으로 남은 잔머리까지 실핀으로 단단히 고정하며 손을 뗀다. 몇 번이고 공을 들여 세팅한 머리카락, 퍽 어울리는 자줏빛의 드레스는 몸을 감싸고 작은 모자까지 얹어놓으니… 꽤, 수준이 아니라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울려 버려. 몸을 몇 번인가 거울 앞에서 돌리고 비추느라 치맛자락이 꽃잎처럼 펼쳐지고 흐트러지는 것을 보고 있다면 일순 눈이 마주친다. 잠시간 묘한 정적이 이는 것을 의도적으로 깨트린다.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시선을 거두고 문 밖으로 향하는 그녀를 배웅하면서 주먹을 꾹 쥔다. 뭐냐고, 그 아쉽다는 눈. …하, 잊어버리기라도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웃겨라… 더 말을 하는 대신 트레이너들이 모인 2층의 관람석으로 향하는 발길을 서두른다. 어쩌면 이것은 헛짓거리일 수도 있을 것이다. 너는 내가 보지 않아도 멋진 무대를 할 것이란 것에 의심은 없다. 거기다 다시 볼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겠지. 그저, 그저-
…나는 그런 헛짓거리에 가치가 있음을 알고 있을 뿐이다. 매일 아픈 다리로 걸으려고 노력하던 것도, 어린 날의 밤을 집보다 병원에서, 부모님이 만들어준 식사보다 병원식이 더 익숙했던 어린 시절의 ‘헛짓거리’가, 시간을 거듭하며 더는 뛰어도 다리가 망가지지 않는 몸으로 만들어주었단 것을 알고 있다.
기꺼이 난간을 붙들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무대 위에서 내가 세팅해준 머리로, 보랏빛 드레스를 팔랑팔랑 휘날리는 너를 본다. 구두로 바닥을 소리 나게 밟으며 웃고 춤추는 너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나는 너에게 박수갈채가 쏟아질 때쯤에야 발길을 옮긴다.
…젠장, 어린애들 사이에 끼기 싫었는데. 어린 애들에게 질투하기도 싫었는데. 심볼리 크리스 에스도, 탭 댄스 시티도 싫어하는 건 아니야. 그렇지만, …역시 싫어. 아무에게도 못 넘겨줘. 베스트 데이트라던가 몰라. …저 녀석은, 전부터 쭉 내 댄스 파트너란 말이야. …차고 있던 크리바트를 거칠게 당겨 푼다. …기대하라고, 타니노 김렛.
…너를 애태운 만큼 가장 완벽히 ‘천사’가 되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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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센 학원의 복도에 일순 작은 파란이 일었다. 흰색 제복을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길지 않은 머리를 뒤로 내려 묶은 백발의 우마무스메는, 말 그대로 모델처럼 큰 키와 합쳐져 아직 드로와 이벤트의 열기가 식지 않은 학원의 복도에 작은 술렁임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우리 학원에 저런 애가 있었어? 아니, 트레이너인가? 엄청 잘 어울린다…근데 트레이너면 왜 저렇게 완전 드로와 의상 같은 걸 입고 와? 이상하지 않아? 수도 없는 술렁거림과 추측, 그리고 궁금증이 우마무스메의 귀로는 충분히 들릴 텐데도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어깨에 걸친 코트 자락을 펄럭이던 그것은-
이내 끝이 난 드로와의 뒷정리에 한창인 강당의 문을 열고,
…오늘의 ‘베스트 데이트’ 이자 화제의 중심, 타니노 김렛에게 붉어진 것인지, 조명 때문인지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선 손을 뻗었다.
“저의, …데이트가 되어주시겠습니까?”
…
애초에 처음부터 지는 싸움이었다. 너는 그저 날 기다리기만 하면 됐을 테니까. 애초에 응하지 않아 아쉬운 얼굴을 보는 것도 내 패배고, 너에게 응해버려서 그 모든 부끄러움과 준비를 견디는 것도 내 패배니까. …그러니까 기왕이라면 네 트레이너에게 걸맞은 일을 하고 싶었다. 옷을 준비하느라고 집안에 전화를 넣어서 필요한 옷을 맞출 때가 제일 부끄러웠지만, 그래서 만족스러운 착장을 받을 수 있었으니 어떻게든 됐나. 네 머리를 만져주고, 더 늦을세라 공연을 본 후. 네가 뒷정리를 돕는 틈을 타서 미리 준비해 둔 옷을 갈아입고, 머리는 대강 묶고- …일부러 사람들의 시선을 끌도록 복도로 향해서, 문을 크게 열어젖히고 주위의 시선을 악착같이 끌어모으며-
…기꺼이 너에게로.
나는 기꺼이 가장 추잡한 방법으로 제 패배를 받아들였고,
너에게 보답으로 가장 커다란 박수갈채를 받을 것이다.
그러기로 약속했으니까.
손을 잡는다. 이렇게나 작았던가, 그리 생각하며 손가락을 서로 얽히게 하고 몸을 맞닿게 한다. 서로의 다리를 얽히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고, 발을 빼듯이 하며 음악에 춤을 맞춘다. 너의 손길에 따르고, 네가 바라던 대로 움직이며, 각본에 따르는 인형처럼. 연신 어딘가 자신만만, 만족스러운 시선을 하고 있던 너와 시선이 맞으면 또다시- 끝도 모르고 얼굴로 열이 몰리고 말아.
애초에 다른 사람이 부탁한 것이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이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일부러 한 몸에 끌어모으는 것도, 그런 식으로 초라한 춤의 신청도 하지 않았을 테고. 일부러 비밀로 하고 옷을 준비해 꾸미고 나타난다는 거창한 짓을 하지도 않앗을 것이다. …나는 네 앞에서만 수치를 알고, 네 앞에서만 수치를 잊는다는 번거로운 짓을 하고 만다. 그러다가도 네가 만족스럽다는 듯 작게 웃기라도 하면, 나는 또 그 웃음이 가슴에 박힌 채 그것을 잊지 못하고 영원히 번민한다.
나는 안다. 너의 눈동자에 나는 또 꿰뚫려 죽고 말 것이라는 걸. 너의 시선이 버릇이 되는 건 결국 나 뿐일 것이라는 걸.
“저기, 김렛.”
“뭐지?”
“정말, …좋아해.”
나는 솔직해지는 것이 어렵다. 내가 좋아할수록, 좋아하는 마음이 클수록 그게 더욱 힘들었다. 정말 고마운데도, 솔직하게 말할 수 없어. 정말 좋아하는데도 괜히 말이 반대로 나와버려. 그래서 남들과 나를 멀리했다. 상처만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은 이런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마찬가지로 나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그런데 너에게는 자꾸만 진심을 전하고 싶어져서.
굳이 핀으로 정리하지 않았던 옆쪽 머리카락이 움직임에 흐트러지며 네가 웃는다. 쏟아져내린 스포트라이트의 빛 아래, 연노랑색의 눈동자를 반짝이는 네가. 지금 이 순간 눈부시게도 아름다운 나의 데이트가.
단 한 마디만을 전했다.
“-나도 좋아해.”
춤을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마친 우리에게 우레와도 같은 박수가 내린다. 하토르의 축복에 감사하다던가 말하며 기꺼이 허리를 숙이는 너를 나는 시선을 떼지 못한다. 나는 너의 그 한 마디를 기억한다. 너의 약간 붉어져 있던 뺨을, 데이트가 되어달라고 했을 때 잠시 보기 드문 그 얼굴을 한 것을 기억한다. …더는 머리에, 심장에 박혀 잊히지 않을 것이다. 잊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너에게 좀 더 취하고 싶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