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대한 우마무스메
  • 2025. 4. 27. 01:08
  • “트레이너 선생님, 그게, …대체 무슨 소리세요?”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슈발… …‘재팬컵’은, 포기하자고 하고 있는 거야.”

    팽팽히 긴장된 듯한 분위기가 기이했다. 슈발 그랑은 이것이 마치 플래시백이라도 된 듯 어딘가 겹쳐지는 상이라는 감각을 느꼈다. 자신이 무심코 계속, 계속 트레이닝을 하겠다고 말한 순간 그가 만나고 나서 처음으로 언성을 높였을 때의 얼굴과 똑같았다. 어딘가 닮아 있다. 그런 기이한 기분을 느끼고 있자면 그는 굳은 얼굴로 계속 말을 꺼낸다. 

    “슈발도 알고 있지? 우마무스메가 마음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는 건. 이번 일… 솔직히, 많이 충격이었을 거라고 생각해. 네가 괜찮아졌다고 생각해도… 아닐 수 있어. 넌 어리니까. …우마무스메의 달리기는 몸에 그 속도만큼의 엄청난 부담을 줘. 정신적인 문제는 쉽게 부상을 불러오기도 하고. 난 그래서라도, ‘재팬컵’에 널 내보낼 수 없어…!”
    “하지만 트레이너 선생님, 저는, 그러니까…!”
    “나, 나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의자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세게 짚은 책상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흔들거린다. 날카로운 목소리, 평소엔 절대로 볼 수 없는 언성을 높인 모습. 무어라 말하기도 전 메구로는 얼굴이 보이지 않게 고개를 숙이고 평소와는 여실히 다른 모습으로 말을 이어갔다.

    “네가 그러다가,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큰 부상이라도 입으면 생명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나는 너희 언니랑 동생에게도 볼 낯이 없고, 거기다, 거기다… 난 널…”
    “트레이너, 선생님…?”
    “너가, 네가 망가지기라도 한다면, 부서지기라도 한다면!! …나, 나는 어떻게, 어떻게… 안 돼…”

    모자의 챙이, 이마에 가까워지면서 눌려 눈이 잘 보였다.  와락 잡힌 어깨는 상대가 인간임을 감안해도 악착같이 힘을 넣어 둔한 통증이 일었다. 비뚤어진 안경. 방금 전까지 전속력을 내 달리기라도 한 듯 허덕이는 숨. 바들바들 떨리는 손길은 힘이 들어간 것과는 정반대로 너무나 연약하게만 느껴졌고-
    그랑은 그제야 제 트레이너의 눈동자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어지럽게 흔들리는 눈동자에 공포감이 베인다. 맑은 물과도 같던 것이 지독히 탁해져서, 눈이 두려움에 가려진 꼴이었다. 총명하던 빛은 어디도 없다는 듯이. 너무나 불안해 보이는 그 낯을 보자마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모든 걸 알았다. 이 사람은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고. 겁을 먹어버렸다고. …자신이 부상을 입는 것을. 일반적으로 느끼는 두려움보다 한 없이 많이 지금 느끼고 있다고-
    정신 차리니 제 어깨에서 떼어낸 손을 잡고 있었다. 전에 몇 번이고 웃으며 그가 잡아주었던 손을 떠올리며. 온기라곤 없이 차게 되어 버린 손을 잡고, 그 온기가 조금이라도 전해지길 바라며 아직 다 정돈되지도 못한 단어를 무작정 입 밖으로 낸다.

    “전, 전 그래도 재팬컵을 뛰고 싶어요! 저는, 저는…부서지지도, 무리하지도 않아요!! 제가, 제가 트레이너 선생님을 믿었던 것처럼! 저는, 트레이너 선생님이 좀 더, 절 믿어줬으면 좋겠어요! 그야, 트레이너 선생님이… 키워준 몸이니까요. 저는, …절대로, 선생님이 무서워하는 일처럼, …피로로 부서지거나, 다치거나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나가고 싶어요, 재팬컵.”
    “그, 치만…”
    “…괜찮은지 아닌지,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지금 드는 생각은… ‘이기고 싶다’ 에요. …이기고 싶어요. 이겨내고 싶어요. 트레이너 선생님. 저는… ‘재팬컵’에서, 반드시 우승해서 ‘위대한 우마무스메’가, …되고 싶어요. 제 소중한, 둘도 없는 친구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우마무스메가…!”
    “…!”

    일순간, 그 눈동자에 총기가 돌아온다. 다시 저를 비추는 푸른 물 빛의 눈동자에 저가 담긴다. 트레이너 선생님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결국 별 말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지켜봐주었으면 하는 사람이, 하나 늘었다.



    나는 죄를 지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아니, 어쩌면 한 사람의 미래를 내 손으로 닫아 버린. 창창한 젊은 여자아이의 미래를.
    그리고, 그녀의 가족들, 그녀의 주위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해버린 난 정말로 최악의 인간이다.
    그러나 어찌저찌 질긴 명줄도 가지고 있어 죽을 수 없었고, 태어나게 해 주신 은혜 덕에 주위 사람들은 내가 죽는 것으로 불행해져 버려. 그러나 살아있기엔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큰 죄를 지은 몸이다. 좋은 사람이라고는 더더욱 할 수 없는 나는 어떻게 죄를 용서받아야 할까.
    방에서 책을 읽으면서 방법을 찾다가 결국 마침내 내가 떠올릴 수 있던 방법은 고작 이것이었다.
    모두들 내 잘못은 아니라고 하지만 난 그것이 그들의 상냥함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알고 있기에, 솔직히 말해 몇 번이고 다시 도망치고 싶었다. 대가라는 이름의 도피로 전에 부상을 입혔던 기록까지 전부 없앤 주제에. 후배인 체 한 주제에.
    …그렇기에 그 애는 나에게 작은 구원이 되었다.
    두 번째 담당 우마무스메, 슈발 그랑. 파란 눈동자와 흰색 브릿지가 매력적인 갈색 머리카락을 단발로 자른, 해군과 비슷한 모자를 쓴 약간은 소심하고, 조용한 데다 조심스러운 아이.
    솔직히 말해 귀찮을 수도 있는 매일 끝나고 연락하는 것에 응해주고, 조금 무리수를 두어도 오히려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아 주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매번 열심히 한다. …저 애가 나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망가지고 무너진 나를, 이렇게나 거짓말쟁이인 나에게, 항상 웃어주는 상냥한 너를 ‘위대한 우마무스메’로 만들고 싶다고 줄곧 생각하니까. 순수한 네가 내 추악한 면을 전혀 알지 못하니까. …그러니까 너는, 슈발 너는 나의 구원이오 기대, 내게 손을 내밀어준 어둠 속 빛 같은 사람이었을 텐데.

    “선생님께서 처음에 저를, 눈부신 곳으로 데려다 주셨으니까요. 어두운 곳에서 웅크리고만 있던 제게… 꿈을, 내걸게 해 주셨으니까요.”

    미소 지으며 웃는 너에게 다녀와,라는 말 이외엔 하지 못했다. 너는 저렇게나 용기 있게, 근육이 붙은 다리로, 미래를 보며 반짝이는 눈동자로, 열광 가득한 패덕으로, 용기 내어 나아가는데도. 내가 너의 꿈을 ‘또’ 한번 닫은 걸까 봐, 나는 절대로 너를 데려다준 것이 아닌데. 네가 직접 그 문을 열었을 뿐인데. 무거운 발을 끌면서 가장 네 레이스가 잘 보이는 위치에 자리한다. 너의 문을 닫은 게 나라면, 그 대가도 모두 내가 치러야 한다고. 그리 생각하면서 강하게, 강하게 펜스를 잡았던 다음 순간에-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안경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크게 휘날린다. 자랑하던 눈썰미가 마치 연사로 찍은  사진처럼, 느린 사진 한 장 한 장을 연속으로 보듯이 시아에 가장 먼저 달려 나간 우마무스메를, 푸른 망토를 펄럭이는 그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운 담당 우마무스메를 비춘다. 울리는 중계석의 목소리도, 환호성을 내지르며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관객석도 똑똑히 들린다. 수도 없는 환호성에 휩싸인다. …정말로 해냈어, 내 담당이… 내 담당이. 담당 우마무스메가. …부서지지도, 다치지도, 무리하지도 않았다. 위대한 달리기를 해냈다. 어째서인지, 뺨을 타고 타는 듯 뜨거운 것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울부짖는 너를, 하늘을 향해 외치는 너를. …반짝거리는 너를. 손등으로 눈가를 훔쳐도, 훔쳐도 흐릿해지는 시야로 계속 계속 눈에 담았다. 너밖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너무도 푸른 하늘, 반짝거리는 잔디, 환호성이 울려 퍼지고 컨페티가 날리는 하늘에. 이윽고 쓰러지는 너를, 이글거리는 불꽃처럼 뜨거운 너를 간신히 끌어안고서. 코스를 떠나면서. 너에게 울린, 그리고 나에게 울린 환호성을 뒤로하며, 안경에 묻은 먼지며 흙을 닦아내면서.

    …그렇구나.
    내가 지켜주지 않아도, 부서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슈발은 이미 충분히 강해졌구나. 그렇구나, 난 이번만큼은 담당이 다치지 않게 트윙클 시리즈를 완주하도록 해낸 거구나… …그렇구나.

    너의 그 괜찮아는, 어쩌면 나에게 보내는 괜찮아, 였을지도 모르겠구나. 아니, 너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더라도 나에겐 이미 그런 일이 되어버렸구나.
    너는 정말로, 정말로 나를 구해준 ‘위대한 우마무스메’구나.

    어째서인지 뺨을 타고 뜨거운 것이 흘러 멈추지 않았다. 너의 옷에 눈물이 방울방울 얼룩을 만드는데도 기계적으로 발을 움직이며 흐릿한 시아로 계속, 계속 움직였다.

    …얼룩지고 망가진 안경인데도 왜인지 시아가 또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구나. 내가 문을 닫아 버린 건 나였어. 네 문까지 닫으려고 해 버린 것도 나였어. …내가 닫아버린 문은 오직 나의 것이었어. 네가 그러지 않게 도와준 거야. …이제야 똑똑히 보여. …넌 정말로 위대한 우마무스메구나. …너가 자랑스러워, 그랑.

    빛이 가득한 코스를 떠나 지하마도로 향하는 두 명이 있었다. ‘위대한 우마무스메’ 라 칭해진 자그마한 우마무스메는 열기를 띈 채 연약한 인간의 품에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안고 있던 초라한 인간이 하나 있었다.
    그 아이처럼 반짝거릴 수는 없다. 오히려 닳고 망가져 있다. 어딘가 깨진 구석도 있고, 자랑하던 안경조차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어째서일까.

    그 인간은, 그 트레이너는… 어째서인지 어둠이 짙게 깔린 그 지하마도에서도…
    스스로 빛을 발하듯, 반짝거리며, …찬란한 빛을 내면서, 깊은 지하마도로 들어섰다.
    그 어떤 어둠도, 둘을 막지 못할 것처럼.
    등을 돌린 그들에겐,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만 같은 환호성이 귀에서 떠나지 않을 정도로 크게, 또 크게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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