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에게도 필요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짐을 정리하는 날엔 비가 내렸다.
은색의 머리카락이 물을 머금고 회색빛이 된다. 흰색과 검은색으로만 이루어진 눈동자는 결국 회색 하늘을 담는다. 그러다가 이내 물이 쏟아지면 머리를 가렸던 우산조차도 놓아 버린다.
철퍽거리는 소리가 나는 신발을 벗는다. 양말로 길 위를 걸으며 소리내어 울었다.
결국 그 누구도 나 같은 건 원하지 않았다.
애초에 당연하다. 한 번뿐인 트레이너 인생이다. 실적도 못 내고 두각도 보일 수 없는 학생 따위 원치 않을 것이다.
내가 다른 애들보다 특출나지도 대단하지도 달리는 것에 재능이 있지도 못하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나도 내 이야기를 이 종이 위에 가장 아끼던 잉크들로 써내려가고 싶었어.
아무리 험난하고 볼품없더라도 이것이 ‘내’ 이야기 라고 말하고 싶었어.
그랬을 뿐인데.
나에겐 이야기를 시작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애초에 나를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기에.
내가 의미없는 존재였기에.
잉크가 빗물에 먼져 흉하게 됐다. 종이가 쭈글쭈글해져 못 쓰게 된다. 내 울음 소리조차 비 속에 묻힌다.
…그 날 이후 열이 올라 한참 앓았다.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이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정도로 주위의 시선조차 신경쓰지 않고 실컷 울고 난 후의 집에선, 날 놀란 얼굴을 하고 맞아 주었다.
…바보같아.
내게 허락된 행복은 딱 이 정도였을 텐데.
 
 
제 이름은 실버 폰타인.
우마무스메입니다. 오늘 트레이너가 되었어요.
제겐 꿈이 있어요, 아주 작은 꿈이.
그 꿈은, 아주 멋진 책을 쓰는 것.
전 만년필을 좋아해요. 부모님의 취미를 물려받았거든요.
그래서 그런 멋진 만년필도, 그 만년필에 어울리는 잉크나 종이도, 그것들로 글을 써 내리는 것도, 정말 좋아해요.
그래서, 꼭 제 수필로 직접 책을 쓰고 싶어요.
정말 멋진 이야기를 남길 우마무스메의 옆에서 그녀를 지탱하고 도우며, 그녀가 주역이 되는 정말 멋진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요.
라이벌들과의 접전, 위기조차도 뛰어넘는 압도적인 힘…! 그녀들 곁에서, 그런 이야기를 보고 써내려갈 수 있다면… …더 없는 행복이고, 분명 그게 제-
꿈이니까요.
 
 
-----
 
 
…담당 우마무스메, 오르페브르. 여러모로 우여곡절도 있고, 참 이상한 아이지만…정말 멋진 아이다.
3관 달성이라는, 우마무스메 모두가 우러러 볼 위업. 그걸 직접 옆에서 보고, 쓰게 해 준 정말이지 꿈 같은 일을 해낸 나의 담당 우마무스메.
쓴 기록들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풀어보는 어린아이처럼 심장이 뛴다. 매일매일 수기로 적은 멋진 기록들. 그녀의 하루하루의 노력을 기록한 것만 봐도 가슴이 뛰다 못해 터질 것만 같아서…그리 웃는 얼굴로 넘기던 손길이 뚝, 한 페이지에서 멎는다.
 
“아…”
오늘 낮의 일이었다. 언제 들어온 것인지 열심히 수기로 작성하던 노트를 오르페브르가 빼앗아 가서, 그런데 또 무리하게 빼앗다가 찢어질까 싶어 억지로 뺏지도 못하고 한참이나 머뭇거리며 곤란해 하고 있던 차였다.
내 불안감이 확신이 된 것인지, 오르페브르는 종이를 넘길수록 얼굴을 찌푸리는 것이 보여 혹시 찢거나 하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을 하던 차에-
“…어째서,”
“엣?”
“어째서, 이 곳엔 ‘너’가 없느냐고 물었다.”
“아?”
“…대답하도록.”
“…에, 그야…난 오르페브르의 트레이너고, ‘폭군’ 의 빛나는 여로에- 트레이너인 내가, 끼어들 자리 따위는 없는 게 당연하잖아?”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나?”
“…? 왜, 무슨 문제 있어?”
“…마음에 들지 않는군.”
 
그 직후 손에 들고 있던 만년필을 빼앗겼다. 순식간에 저항할 새도 없이 오르페브르는 그것으로 책 위에 무언갈 슥슥 휘갈겨 쓰나 싶더니 제게 펜과 책을 돌려주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트레이닝 자료를 훑어보고 있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오르페브르는 그 날 내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거 같아서, 이래저래 트레이닝 중엔 고생이 많았었다-
 
…노트를 펼친다.
거의 다 써진 페이지의 맨 아래쪽 부분.
…펜촉이 망가지지도 종이가 찢어지지도 않은 그 곳에는 휘갈겨 쓰듯 한 필기체로 적혀 있다.
 
——실버 폰타인.
어째서, 어째서 이런 걸 적은 것일까.
…나의 이름 따위 너의 여정에…
…너의 '황금의 여로’ 에,
…은색 빛은, 절대로 어울리지 않아…
 
…지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한숨을 쉬며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힘을 주어 쓴 노트에 이름이 자국을 남겨서 한동안 지워질 거 같지 않았다.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데.
일부러 조금 힘을 주어 또박또박 기록을 적어내렸다.
…그 은빛따위 전부 지우듯 덮어 버릴 수 있도록.
 
…악몽을 꿨다.
오르페브르가, 개선문상에서- 2착을 차지하는 꿈을.
분명, 그래서.
나는 그렇게 맡겼다. 오르페브르의 개선문상 출전에 대한 관심을 가진 트레이너에게. 그 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다렸다. 많은 이들과 자리에 둘러앉아서. 꿈을 꾸었다. 황금빛 꿈을.
…그러니까, 이런 것이 악몽이 아닐 리가 없어.
너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은색 빛 따위는…-
…아아.
——한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해가 지도록 방 안에서 가만히 있었다. 어째서, 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서 우두커니 있었다.
그러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공항에 데리러 가면, 다시 분노한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 아무것도 모르게 되어 버렸다.
트레이너실에서 쫒겨났다. 정확히는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녀가 들어가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다. 그 누구가 들어가도 벽을 친 채로. 폭군은 고고하게 스스로를 왕궁 속에 가두고 있었다.
해결하겠다고 말하고 문고리를 쥐고서도 정신이 다른 곳에 팔린 듯 현실감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두려웠다. 나 따위가 다가갈 수 없어, 따위의 고결한 이유는 아니다.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몰라. 나 따위가 들여다본다고 해서 뭐가 달라져? 내가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뭔가 대단한 사명감이라도 가진 건 아니지? …같은 느낌의.
그럼에도, …그럼에도.
나는, 그녀의 트레이너라고. 그녀의 지팡이라고.
도망치는 것도, 두려워하는 것도. 용납되지 않아. 그녀가 겨우 인정해줬다. 아무도 원치 않는다고 생각해서, 계속해서 계속해서 트레이너로서 ‘이야기’ 를 남길만한 애를 찾는다는 명목 하에 계속 도망쳐왔다.
어차피 선택하지 않겠지. 그렇게 자포자기로 선택한 길에 왜 그렇게 매달려 왔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았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지팡이로서, 트레이너로서 실격이라고.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어두운 방 안에서 떨고 있었다. 스스로도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말에 단언도 할 수 없으면서 이래도 되는 걸까, 란 생각이 들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온 몸에 꿰뚫리는 듯한 공포를 느끼면서도, 스스로가 무어라 지껄이는 건지, 화가 나면서도. 스스로의 입을 틀어막고 싶어지면서도. …말을 멈출 수 없다.
…계속, 계속, 계속. …결국 손목을 틀어잡혀서, 손목이 아파 올 때까지. 우마무스메가 아니었다면 분명 조금은 다쳤을 것이다. 손목이 아릿해서 도저히 무서워서 견딜수가 없을 텐데-
 
“왜 그 자리에 없었던 거야!”
 
싫어.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런 소리 하지 말아줘.
 
“이끌어 줄 빛조차, …보이지 않은 채로.”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아줘.
…싫어.
그런 거, 그런 거.
 
“미안해, 오르페…”
 
…아아, 말하고 싶지 않은데.
입이 멋대로 지껄이고 있어.
이런 소리 하면, 분명-
 
“난, 아무것도 몰랐어…”
 
…경멸, 당하고.
비웃음, 당하고.
분명, …분명.
 
“너에게는…… 내가, 필요했는데.”
 
너조차 나를 원하지 않게 될 텐데.
쓸모없어지고 말 텐데.
아무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를,
원하는 일이, 있을 리가-
 
 
“…늦어.”
 
——아.
 
“너무 늦었어…”
 
…아아, 그렇구나.
나, 있었구나.
…나, 아직, 아니, 처음부터 넌.
…나를, ‘필요하다’ 고 생각하고 있었구나.
 
…나조차, ‘필요없어’ 라고 생각했던 나를.
너는, 줄곧…
‘필요해’ 라고, 생각해주고, 있었구나…-
 
 
…다시 잃어버린 역활을 되찾았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로서 통증을 느꼈다. 제 손목을 거세게 움켜쥐며 그 통증을 각인하듯 힘을 풀지 않았다.
속에서 불타는 불꽃이- …고작 쇳덩이도 되지 않을 저를 녹일지라도.
 
“너의 불꽃을—— 계속 같이 느낄게”
 
나는, 기꺼이.
당신이 쥐는 것이 되리라.
당신의 기록자가 되리라.
영원 불멸, 당신의 ‘황금의 여로’ 를 남기리라.
…영원히,
당신의 지팡이 되리라.
 
 
 
 
 
 
스윽, 스윽. 조용한 방 안에서 펜 움직이는 소리가 유달리 잘 들렸다. 조용한 방에서 마지막 장에까지 꾹꾹 눌러 글씨를 쓴 회색 머리의 우마무스메는 이내 책을 들어올리며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다 됐다!!”
손때가 타고 낡아빠졌지만, 결국엔 완성했다. 하나하나 잉크를 써가며, 펜으로 수기로 적은 그것이. …아주 기나긴, 어쩌면 터무니 없이 짧았던…- 3년의 여로가.
이것에 무어라 이름을 붙이면 좋을까. 앞으로, 와 지금까지, 에 무어라 이름 붙이면 좋을까. 더 고민하지 않고 금빛으로 반짝이는 펜촉의 만년필에 금빛 잉크로 조금은 손때가 탄 표지에 멋들어진 글씨를 적는다.
 
[황금의 여로를 향해]
잠시간 만족했다. 이내 입가에 띄운 미소를 지우기도 전에- …추가해야 할 것을 떠올려, 그것이 오래 가진 않았지만. 은색 펄로 반짝이는 회색 잉크를 꺼낸다. 서랍을 뒤적여 백금으로 된 펜촉을 가진 가장 아끼는 만년필에 잉크를 흘려보내 이내 그 위에 다시 한번 적는다. 조금은 삐뚤어지기도, 조금은 어설프기도. 약간 번져가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겨우 써낼 수 있었다.
 
[왕의 지팡이이자 기록자, 트레이너 실버 폰타인 저자——]
 
“…헤헷.”
 
결국 참지 못하고 만족감에 껴안는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이야기 따윈 아무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나에겐 쓸모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고. 어디에도- 내가 있을 자리는 없다고. 그렇게 계속,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제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녀는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고, 조금 제멋대로에, 가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할 때도 있고, 가끔은 제 상식 외의 행동을 하기도 한다. 기분을 맞춰주기는 어렵기 짝이 없고, 위압적이고 무서운 면도 확실히 있어서 고생스러운 적도 많다. 손목에 남은 자국은 3년을 마치는 이 날까지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이 여로에, 그야말로 극상의 여행이였다고- 황금빛의 여로였다고.
그리고, 그 ‘폭군’의 패도가-
…지팡이인 저에겐, 은빛일 뿐인 저에겐,
그 누구보다도, 황홀했노라고,
최고의 이야기였다고,
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고 있다.
 
아아, …당신의 트레이너여서 정말로 다행이야.
 
 
 
 
 
 
 
 
 
 
 
 
 
 
 
 
 
 
“…뭘 혼자서 끝내고 있는 거냐, 얼빠진 것.”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오, 오, 오, 오르페에에에에??? 여기는 어떻게 들어온 건데?!??”
“트레이너 실에 열쇠를 두고 갔더군. 연락도 받지 않고. …너는, 여의 소유물이다. 네 마음도, 네가 믿어야 할 것 조차. …유일무이하게, 짐의 것이다. 나의 미래를 받아가려 한, 책임도. 평생토록, …그러니…지금 받아가지. 연락을 받지 않은 대가는.”
“에? 에? 에에에에에??? 뭐, 뭘 하려는? 으아??! 책 뺏지 맛, 꺄악?! 아니, 아니 잠시만 어딜 가는 건데???!”
“그것도 모르는 건가? 하아… …한 해의 끝이다. 전야제 정도는…필요하겠지. …어디까지든 따라오도록.”
“……하아. …네에.”
“…그래.”
“…기분, 좋아 보이네.”
“…시끄럽다.”
“…네에, 나의 왕이시어.”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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