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면, 한계였다고 생각한다.
우마무스메가 본능에 휘둘리는 타입이니 본능의 정도가 이성보다 강하니 어쩌니 하지만 그런 것 따위엔 별로 관심도 없고 할 생각도 없었는데. 그 와중에 전부 부추긴 이 쪽 탓이다. 머리가 따끈따끈해서 도저히 귀를 펴고 있을 수가 없다. 속에서 도는 열이 드글거리며 배에 고이고 남은 것은 질리지도 않는 듯 온몸을 망가트린다.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머릿속이 비가 온 직후의 물웅덩이처럼 뿌옇다. 숨까지 더워져서 겨우 그것을 허공으로 뱉고 있으면 이내 눈앞에 이 순간 가장 만나고 싶지 않던 사람이 얼굴을 무작정 들이밀었다.
“여의 연락을 무시하고, 여기서 그런 얼빠진 얼굴로 뭘 하고 있느냐.”
“오르페…”
헤롱헤롱한 머리가 잘 돌아가질 않는다. 만나면 안 되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더라. 왜인지 손목을 잡고, 손을 잡고 싶어지는데 들어주지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금세 단념할 수 있다. 오늘은 무얼 하더라도 안 된다는 뜻으로 팔로 눈을 가리고 손사래를 치면 순식간에 심기가 상한 것 정도는 눈으로 보지 않고도 느낄 수 있다. 그 이후엔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짜증이 난 목소리로 무어라 한 것 정도 이외엔.
이렇게 엉망진창인 설명을 하게 된 계기? 그거야… 당연하지 않나.
푸욱 눌리는 살 같은 것이 느껴진 게 다음 순간, 머리가 희게 표백된 그대로 굳었다.
분명 몸에 들이대는 것에 좋은 부위는 아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의식하지 않았으니까. 전혀 이상한 감정을 품지도 않았고, 아니 새삼스레 이런 부위가 있었다 싶을 정도니까 어쩌면 자연스러운 반응일지도 모른다. 위기감이 없다는 걸까. 위험한데 이거. 애초에 그녀다. ‘그’ 오르페브르다. 위기감을 가지지 않는 건 오히려 당연할지도 모른다. 누가 감히 왕의 옥체에 손을 댄단 말인가. 그렇지만, 어쩌면, 나라면. …아니, 역시 다시 생각해도 과한 생각이다. 제대로 교육해서 교정해야 한단 생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어째서? 그야, 난 교육자니까. 보호자고 트레이너-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과하잖아. 난 트레이너 일로도 매번 무리하고, 오르페와 신하들을 챙기는 것만 해도 일이 과중한데. 오르페의 억지며 다른 업무들까지 떠맡기도 하고. 저니 씨는 무섭고. 후배들 지도야 내가 원해서 하는 거지만. 아, 안돼.
머릿속에는 벌써 뭉게뭉게 안개가 껴서 전에 봤던 광경만을 떠올린다. 무대의상의 겉옷을 걸치지 않아 흰 어깨며 가슴골이 죄 보였던 광경을 생각한다. 보고 있자니 제 얼굴에 다 열이 올라 급하게 담요를 가져와 어깨를 감쌌더니 픽 웃음을 흘리고는 그 속에서 겉옷을 입고 나가던 네 모습이. …단순히 노출이 많아서 눈에 남을 뿐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시선을 눈치챘던 건가. 너는 계속해서 내 시선을 의식하고 봐 왔던 건가. …나는 널 어떤 눈으로 보고 있었지. …역한 것이 속에서 흘러넘친다. 그러면서도 고장 나서 멈추지 않는 수도꼭지처럼 멈추지 않는다. 네 몸에 열광하고 있던 나,라는 단어는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죄스러워서 견딜 수 없는데, 넘치도록, 분에 차도록 애정을 받은 사고는 오만하게도 용서받을 수 있지 않을까, 라며 안일한 희망 따위를 말한다. 나조차도 누군가 내 몸을, 아무리 동성이라도 연상이 그렇게 보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기분 나쁠 텐데. 팔랑팔랑한 옷이라고 해도, 아무리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는 몸이라고 해도… 아아, 더는 안 돼. 단 한 번도 스스로의 몸이나 얼굴에 자신감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제대로 된 판단을 못 하겠어. 어느샌가 팔이 눈가에서 떨어져 있었다. 머릿속이 혼탁했다. 보라색 리본이 방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본디 타인끼리엔 동성이라도 만지는 것에 저항감이 있는 부위-가슴에 손이 살짝 스치는 것도 개의치 않고 리본을 잡아당기고 펜던트를 손가락으로 쓸고선 이내 목에 고정되어 있던 편자 모양 장식이 달린 보라색 리본을 완전히 목에서-
뜯어, 내었다.
투둑, 단추 몇 개가 바닥으로 힘 없이 떨어져 튀기는 소리가 생경하다. 손에 쥔 리본의, 단추로 고정하는 부분은 이미 너덜거린다. 바닥에 휙 내던져버리자 오르페브르는 그 오만한 얼굴에 언뜻 당황을 비추었다. 네, 놈. 황망한 목소리와 함께 손은 그저 더듬더듬 허공을 가를 뿐이다.
더는, 못 참아. 더듬더듬 말을 하며 손을 뻗는다. 어깨를 놓치지 않게 힘을 실어 잡으면 마치 소녀라도 된 듯 오만한 왕님께선 어깨를 움츠리고 손길에 놀란 기색을 숨기지도 못하고 역력히 드러낸다. 왜인지 그게 웃음이 났다. 너가 연약한 소녀라도 된 듯 구는 것에 조금 고양된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그것에 발목이 묶였으니까. 너만 보면 반짝이고 두려울 정도로 압도적이라 도망치고 싶어서 미치겠는데, 너의 그 지독하게 연약하던 얼굴이 자꾸 생각나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결국 또다시 왕의 곁으로 돌아오고 마는 것이다. 왕님께서 이런 낡아빠진, 손에 익은 것만이 장점인 지팡이에게 마법을 걸어버린 것이다. 제 가장 연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것을 대가로,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손으로 돌아오는 마법을.
난 너의 그런 점이 정말 싫어, 오르페브르.
그러니까 용서치 않아. 다음 순간 제게서 무언가가 끊기는 소리가 났다.
더 고민치도 않고 품에 뛰어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지. 시간개념 자체가 붕 뜬 기분이다. 품에 안은 것이 아늑하고 따스했다. 저보다 약간 작아 어깨즈음에 머리를 기대기에도 딱 좋았다. 목에 깊게 숨을 들이쉬고 따스한 숨을 뱉을 때마다 몸이 가볍게 움찔거렸다. 꾹 밀착한 등이 단단했고, 배에도 군살 하나 없었지만 옷감 따위의 덕인지 팔을 기대기엔 딱 좋았다. 무엇보다, 체향이 참을 수 없어. 특별히 무슨 향이라 말하긴 어렵지만, 왜인지 시트러스랑 조금 닮은 것도 같고. 단순히 착각인가? 숨을 크게 들이쉬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향을 맡는 움직임을 하면 오르페브르는 왜인지 품에서 조금 더 흠칫거렸다. 무어라 불만이 있는 듯도 한 그녀의 눈을 일부러 피한다. …아무리 이런 상태라고 해도 학교에서, 그것도 학생인 담당이랑 일선을 넘는다 뭐다 할 리가 없잖아. 바보야? 아, 오르페브르는 원래 바보였던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원래 이런 말 잘 안 하는데. …오르페브르는 왜 엄청 불만스러운 표정 짓고 있는 거지. 기어올라서? 이걸로 봐주지 않으려나.
그리 생각하고서 입을, 아주 가볍게 목덜미에 맞춘다.
읏…! 너, 너어…! 더욱 바둥거리는 오르페브르가 제 손길에 단념하고 다시 진정하기까진 몇 분인가가 더 걸렸다. 그동안 나는 계속해서 입을 맞췄다. 처음엔 고작 이런 일에 바보같이 구는 오르페브르를 놀리기라도 할 생각이었는데. 뭔가 점점 기분이 나쁘지 않구나, 란 생각이 들어. 원래라면 이런 짓 엄청 안 하는데. 화내려나. 혼내겠지. 그치만 그건 역시 나중에 생각하자. 기껏 용기를 냈는데? 지금 나 화내고 있는 거라고, 매번 어리광에 떼를 쓰고 다른 사람이라면 이미 질려서 떠나갈 응석도 억지도 어리광도 내가 다 받아주고 잡아주고 있잖아? 상도 주지 않는 거야? 완전히 폭군이잖아. 너, 신하들에게는 누구보다 상냥한 주제에. 정작 나에게만큼은 마구 어리광을 부리다니 말도 안 돼. 뭔가 부루퉁해진 채로 멋대로 평소엔 생각만 하던 호칭을 입에 담는다. 심장이 두근두근거리네, 오르페브르. 아니, 내 건가.
“…오르,”
“읏, 네 놈… 그건, 누님의-”
“뭐 어때, 평소에 부르는 오르페~랑 어차피 한 글자 차이잖아. 트레이너잖아? 네가 소중하니 지팡이니 말해놓고, 이제 와서 가족 취급은 쏙 뺄 생각이야? ”
아니, 그런 게…
“나한테만 칭찬 엄청 엄격해. 너무해. 얼마나 참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 정도가 아니면 네 어리광 절대 안 들어줄 거야! 절대로 악성적인 의견이 아니라 진짜라고?! 신하들이 너의 의자까지는 되어주지 않는다고! 진짜 너무해, 폭군이야-! 우으… 오르 미워…”
“일단, 정신을 좀 차리고- 네 놈은, 여의…”
“…아, 그렇구나.”
말을 불쑥 끊는다. 그제야 알았다. 그래. …볼 때마다 내가 떠오르는 흔적을 남기면 되는 거잖아. 그렇다면 볼 때마다 칭찬해줘야 한다고 까먹지 않으려나. 너는 매번 네가 내 것이라느니 하는데. 가끔은 지팡이도 날뛰어야 우리 야성적인 왕님께서는 기뻐하시겠지… 무방비하게 드러난 흰 목을 본다. 잘 만들어진 도자기, 혹은 조각상에 가까운 흰 목덜미에 시선을 뺏긴다. 다른 이들이라면 손을 뻗기도 전에 분노한 신하들 혹은 심기가 건드려진 왕의 발길질에 산산조각이 날 거다. 일단 온 몸뚱이가. …그걸 독점할 수 있는 것은 어느 정도 특권인가? 잠깐, 너 뭣-! 다급한 목소리를 듣자 본능적으로 손이 먼저 나가 벌린 입 안으로 손가락 두어 개를 쑤셔넣음과 동시에 손대중하지 않고 목을 와락 입에 물었다.
아, 윽…! 네, 노옴…!! 으, 겍-
몇 번이고 잘근거리면서도, 손으로 혀를 문지르고 당기며 가볍게 손장난을 치고 입 안을 휘적여놓으면서도 혈관 따위를 물지 않게 조심한다. 날카로운 부분을 박아 넣고, 상처가 나지 않게, 혀로 위를 꼼꼼히 덧바르듯 문지르며. 이를 박아 넣고 불편하고 몇 번이고 그 위를 훑게 만드는.
왕이라는 완벽한 순금에 이를 박아넣는 머저리가 되어주마. 끅끅거리며 제 손을 약하게 무는 기세가 약해진 반항조차 이젠 저를 위한 배경음악으로 밖엔 들리지 않는다. 한동안 이를 우물거리며 입 안을 더 젖은 소리가 노골적으로 울리게 치덕거리며 안을 젓는다. … 끽소리도 못하는 폭군을 독점할 수 있다. 거기다 저가 다칠까 싶은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물리적 저항도 없이 그저 몸을 가늘게 떨 뿐이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권력이구나, 하고 자칫 웃음이라도 배어 나올 뻔했다.
슬슬 물고 있는 것이 편해질 때 즈음 입을 떼어놓는다. 선명히 붉은 기가 올라오고 타액에 젖은 것이 마음에 들어 손으로 훑으면 흐으, 작게 뭉그러진 목소리를 뱉으며 쌔근거리는 숨을 뱉는 게 퍽 만족스러워 왜인지 아무래도 상관 없단 생각이 들어 버렸다. 역시 그래도… 너무 아팠으려나? 이번엔 팔을 온전히 써서 품에 감싸 안는다. 목까지 열기가 번져서, 물린 곳을 손으로 감싸는 모양새를 한동안 가만히 지켜본다. 저질렀네, 란 가벼운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어른스럽게 굴어야 하는데. 거기다 이거 내 잘못이니까. 위로하는 말 해야 하지 않나. 오르 화나면 무서우니까. 배를 향해 규칙적으로 흐물흐물 토닥이던 손을 다시 제 쪽으로 끌어오는 데 쓴다. 얼굴이 붉어진 오르페브르에겐 귀에 벌을 주겠어. 아니, 상인가. 고의적으로 목소리를 낮추는 이게 부디 너에게 상이 되면 좋겠는데.
“정말 좋아해.”
“읏…”
“그러니까 너도 나 많이 좋아해 줘.”
“…? 뭐, 어…”
“난 너 많이 좋아하는걸…도망갈 수 없으니까 책임져줘. 가고 싶었는데. 이젠 원해도 갈 수 없단 말이야…”
“네, 놈… 정말…”
“…아, 뭔가 졸려, 이대로 잘게…잘 자 오르…”
“…하아?”
그 말을 하자마자 몸에서 실이라도 끊겨나간 듯 다음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심한 졸음이 몰려와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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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널 물었다고??”
“정말로… 기억이 안 나나 보군.”
실버 폰타인은 지극히 당혹스러웠다. 어제 한 것이라곤 오르페 앞으로 온 팬들의 선물을 체크하다가 업무량이 많았던 탓인지 조금 피곤하고 어지러운 듯해서 잠깐 쉴까, 하고 책상에 엎드린 것 이후…아무 기억도 나지 않았던 것이 이유다. 정신이 드니 머릿속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깨끗했으며, 제 침대에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누워 있었고 출근 후에 제 행적이라도 물어볼까 싶어 향한 오르페브르는 어딘가 멍한 얼굴로 선명한 잇자국이 남은 목을 매만지고 있었으니까. 오르페브르의 말로는 네가 먼저 저를 붙들고 목을 물어 놓았다고는 하지만 역시… 머릿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희게 표백된 머릿속에 그저 물음표만 띄우면서도, 저가 친 사고에 비해 엄청나게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오르페브르가 의문스러우면서도 안도했다. 잇자국이 크게 남긴 했지만 딱히 다친 건 아닌 거 같고, 애초에 화가 났다면 숨길 애도 아니니까. 그렇기에 실버는 어제 선물로 들어왔던, 혹여 이상한 것이 섞이진 않았나 싶어 입에 던져 넣었던 초콜릿 박스를 손에 쥐어주고서 일로 돌아갔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가는 그녀를 보는 오르페브르의 시선이 잠시 가늘어졌다 하면, 곧 그것을 받아간 신하 하나가 초콜릿을 반으로 쪼갰다.
…부자연스러운, 있어선 안 될 흰색 분말과 덩어리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쟁반 위로 떨어졌다.
“효과가 뭐지?”
“…흥분 작용과 이성의 상실, 기억의 혼란과 고양감, 필름아웃… 정확히는 부작용입니다. 우마무스메의 특성상 약물에 민감하다는 점을 이용해 오르페브르님에게 먹이려고 했던 거 같습니다. …포장을 뜯은 흔적이나 초콜릿을 쪼갠 흔적이 없고, 안에 다크 초콜릿으로 코팅한 견과류 따위가 들은 초콜릿이라 눈치채시지 못한 거 같습니다. …향을 숨기기 위해 독한 술 같은 것을 재료로 써서 그랬을 수도. …일단 학원 측에 이야기는 해뒀습니다. …저희도 저희 나름대로 계속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음, 수고했다. …계속 정진하도록.”
“…네. …저기, 오르페브르 님.”
“…무엇이지?”
“…부디 트레이너 님을 너무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분은, 오르페브르 님을 지키려고 한 것이니까요.”
“…이만 물러가도록.”
“네, 그럼 이만…”
달그락, 약이 쟁반을 구르는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사라진다. 잠시간 눈을 가만히 감던 오르페브르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흐트러트리며 숨을 내쉬다가 이내 아직 아릿한 감이 남아있는 목으로 손을 옮겼다. 얼굴에 열이 끝도 없이 올라서 미칠 것 같다. 아릿한 목에 속삭이는 목소리, 목덜미를 간지럽히던 숨소리가 귀에, 머리에, 목에 붙어 도저히 떨어지질 않아서 결국 어젠 잠을 설쳤다. 젖은, 이성이 나가떨어진 흐물거리는 목소리로 ‘오르’ 라던가 누님만 부르던 그 호칭을 멋대로 침범한 것도, 가족이라느니, 널 받아주는 건 나뿐이라느니 하는 건방진 말들. 제 옷을 망가트리고 몸을 아프게 잡으며 입에서 타액이 흐를 정도로 입 안을 휘젓고, 잇자국이 선명할 정도로 옥체에 함부로 손을 대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시작이, 저가 혹시 잘못되기라도 할까 저에게 들어온 선물을 미리 맛보았다가 당한 거라니. …정말이지 이리 아둔한 지팡이가 또 있을까.
…그럼에도, 그럼에도. …오르페브르는 기억을 되짚었다. 눈이 풀려있던 제 지팡이가 지껄였던 것을 떠올린다. 날 많이 좋아해 달라던가, 그런 거, 그런 건- 이미 말하지 않아도 답이 정해져 있는데.
“…이미 많이 좋아하고 있다, …아둔한 것…”
아무도 없는 빈 교실에 작은 고백이 울린다.
이내 침묵에 잠긴 곳에서 담담한 얼굴의 폭군이 그 난폭한 기세를 내보이며 팔짱을 끼고 걸어 나온다.
아무도 모르겠지, …아직 떨어지지 않은 열을 목 뒤에 숨기고 있을 거란 건.
침범당하고 어그러진 왕은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것은 오르페브르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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