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츠나는 하늘을 나는 것들을 부러워했다. 그것은 새라던가, 풍선이라던가,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나 비 같은 것들을 총칭하는 단어였다. 정확히는, 세츠나는 하늘에서 ‘떨어질 수 있는’ 것들을 부러워했다. 그중에서도 세츠나는 물을, 비를 특히나 동경했다. 물론 아무에게도 말할 수는 없는 이야기였다. 비를 부러워한다니, 어느 학교의 어느 선생님이라도 그런 말을 했다간 아이의 정신상태를 제정신이 아니라고 여길 테니까. 세츠나는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철이 들었고, 그 덕에 자신의 꿈이 절대 이루어질 리 없다는 것을 알아 빠르게 단념했고 그 덕에 이룰 수 없는 꿈을 이기겠다며 과하게 떼를 쓰거나 자신을 혹사하는 일도 없었으니까.



비는 돌고 돈다. 공기를 가르고 떨어져, 이내 증발하고, 다시 구름의 일부가 되어, 또다시 빗방울로 가득 찬 구름에 맺혀서 하늘에서 지상을 향해 무참하게도 곤두박질치며… 살고 싶던 삶의 방식 그 자체가 아닌가! 그러니 어떻게 동경하지 않을 수 있겠어. 항상 꿈을 꾸었다. 하늘에서 지상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꿈을. 물론 이룰 수는 없는 꿈이었다. 그 직후 이어질 격통, 만일 운이 나빠 바로 숨이 끊어지지 않는다면 그 후 이어질 지옥 같은 시간은 가늠해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쳐왔다. 그러나 항상 우울감이 극에 달할 때마다 향하는 높은 건물의 옥상, 그 해방감과 자신을 휩쓸듯 불어오는 바람이란 너무나 매혹적이다. 

이젠 죽을 생각을 관뒀음에도 그 곳을 간혹 휴식처로 택할 정도로.



빗방울이 부러웠던 이유는 모든 빗방울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그러면서도 그것을 영원토록 반복할 수 있기 때문에.

몇 번이고 그 일부가 되고 싶다고, 오직 그것만을 반복하며 삶의 고통을 끊어내고 오직 행복만을 취하고 싶다고 이기적으로 바랬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제 죽음이 온전한 행복이 되지 않는 순간인 지금에 와서는, 나에게 빗방울은 뭐지?









비가 내린다.

세상을 적시며, 흐리고 물을 머금어 무겁고 축축한 공기를 가르며 온 세상에 퍼붓듯 비가 내린다. 수십, 수백, 수천… 셀 수도 없이 많은 물방울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이다. 과거였다면 얼마나 부러워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 장관이다. 세츠나는 김이 올라오는 주전자의 손잡이를 쥐고 능숙하게 갓 끓여낸 홍차를 잔에 따라냈다. 비 오는 날에는 그다지 단 것이 먹고 싶지 않아서 설탕은 두 개만, 향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 우유는 타지 않고… 창가에 잔을 놓고 티스푼으로 대강 휘적거리며 세츠나는 생각에 잠겼다. 분명 더 중요한 생각을 하던 것이 있던 거 같은데, 이런 비를 봐 버리면 비에 대한 생각밖에는 할 수 없게 된다. 



과거에는 그렇게나 부러웠는데, 비로소 땅을 딛게 되자 거짓말처럼 그 질투가 녹아 사라져 버렸다. 자신을 하늘과 땅 그 어느 사이 붕 떠 있던 존재에서 땅을 디디게 해준 초광속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겠지. 그러나, 그러나 내가 이제는 정말로 온전히 하늘에 대한 욕망을 버렸나? 내가 정말로 하늘을 바라지 않나? 정말로 나는 비를 이젠 전혀 동경하지 않아? 정말로?



스스로에 대한 물음이 끝 없는 질문으로 이어질 즈음, 결국 세츠나는 찻잔을 창가에 내버려 두고 복도로 내달렸다.

저대로라면 비바람에 식어버린 홍차는 순식간에 차게 되어 버릴 텐데, 덜 녹은 각설탕이 아직 빙글빙글 도는 것을 멈추지 않은 찻잔 속에서 춤을 추고 창문은 열려서 덜컹거렸다.

세츠나는 어지간히 충동적이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제 담당 만큼은 아니어도, 그녀도 어지간히 사고뭉치에 미치광이라 불리기 더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

차가운 빗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눈도, 머리카락도, 옷도… 몸을 온통 적시고 볼품없게 만들며 무참하게도 흐른다. 눈을 뜰 수도 없게 떨어지는 물방울을 연신 젖은 소매로 훔쳐내고 겨우 눈을 뜨면 그야말로 장관이다. 잿빛 하늘, 잿빛 공기 속을 가르며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방울들이 일제히 제 몸을 내던지는 모양이란! 결국 젖은 머리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안 그래도 슬슬 헐거워지던 고무줄이 결국 뚜두둑, 하는 소리를 내며 자르는 것이 번거롭단 이유로 말아 묶어놓던 머리를 온통 풀어버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목은 아프고 얼굴은 아무리 소매로 닦아내어도 흠뻑 젖어 눈을 뜨는 것조차 어려운 데다 담당이 기껏 마련해 준 고급 양복도, 구두도 엉망진창이 되어버린다. 옷이 젖어 살에 달라붙으면 절로 오한을 느껴 몸을 가볍게 떤다. 그런데도 세츠나는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돌아갈 이유를 잘 모르고 있었다. 어릴 적에 소망하던 것을 그대로 이룬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마치 빗방울이 된 것만 같았다. 즐거워서 멋대로 웃음이 나왔다. 우천으로 인해 야외 트레이닝은 죄다 취소되다 보니 그 넓다란 터프가 텅 비어있었다. 



세츠나는 멋대로 그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분명 매일 이 곳에서 달리는 다른 우마무스메들에 비하면 훨씬 볼품없고 느린 달리기겠지. 그런데, 그런데도 발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잔디를 밟는 감촉이 기분 좋다. 달리기엔 분명히 부적절한 옷인데도 전혀 버겁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심지어 이렇게나 흠뻑 젖었는데도. 옷의 무게가 있을 법도 한데 몸은 솜털처럼 가볍기만 했다. 

어쩔 수 없다. 자신은 달리기를 사랑하는 인간이니까.

어쩔 수 없다. 달리기에 대한 맹목적인, 살아갈 수 조차 없는 열망을 포기하고도 여전히 달리기가 좋으니까. 

어쩔 수 없다. 달리는 것이 즐거우니까. 그러니까…

그래, 전부 어쩔 수 없는 거야.



숨이 머리 끝까지 차고, 더는 뛸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띵하고 속이 울렁거리고 숨이 가쁘길래 결국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로 필사적으로 자세를 잡아 바닥에 누웠다. 비는 여전히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내렸다. 젖은 잔디에 눕는다는 건 그야말로 기묘한 감촉이다. 그것도 터프 위에서! 허파에 바람이라도 든 사람처럼 연신 웃었다. 아아, 이대로 빗물이 되고 싶다. 잔디에 스며들고, 옷에 스며들고, 살을 적시는 빗물이… 그대로 흘러간다면, 자연의 법칙대로 영원히 빗물로서 살아갈 수 있다면… 안 될 텐데. … 왜 안 되더라? 아직 호흡이 가빠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머릿속을 엉성하게나마 정리해보고 있자면, 불쑥 붉은 우산과 함께 순식간에 얼굴에 떨어지던 차가운 물줄기가 뚝 그치고 너무나도 익숙한, 붉은 눈동자와 밤색의 짧은 머리카락이 시야에 잡힌다.



“왜 안 된다는 건지, 설명해보게 모르모트 군.”

“… 타키온…”

“정말이지… 못 말리는 모르모트로군! 채혈하러 오라고 연락했는데도 받지를 않아서 트레이너실에 가 봤더니 휴대전화도 놓고 없어지질 않나, 카페 군은 ‘타키온 씨의 트레이너 씨께서 굉장히 이상한 짓을 하고 계시는 거 같으니 빨리 찾으러 가 보세요…’라고 하질 않나, 그 엔젤…다트? 군은 ‘아, 타키온 맞지?! 마침 잘 만났다! 세츠나씨한테 꼭 대면으로 전달해 드려야 할 서류가 있는데 내가 불러도 듣지도 않으시고 운동장 쪽으로 나가시던데 무슨 일 있어?!’ 라든가, 물어봐서 엄청나게 곤란했단 말일세! 거기다 이렇게나 비가 오는데 내가 직접 나가서 찾아오게 하다니… 감기라도 걸리면 어쩔 셈인가! 건강하지 못한 실험체는 이쪽에서 곤란해진다고! 이런이런, 신발에 가운도 젖어버렸고 말이지…이 수고는 나중에 각설탕 제한 해제로 받을 테니 그리 알게나. 자아, 일어나게.”



나는 그렇게 장황하게도 불만을 토하곤 주저앉아 손을 내미는 눈앞의 담당 우마무스메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빗소리는 마치 다른 세상의 일인 것처럼 멍하고, 소매를 걷어 손이 보이게 내민 손은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닌데 약간은 어색하단 기분이 든다. 분명 저렇게 주저앉아 있으면 꼬리도 다 젖을 텐데. 뺨을 타고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면, 그제야 조금 정신이 또렷해지는 기분이 든다. 우산 속은 둘만의 공간. 작지도 크지도 않은 우산은 자연스럽게 숨 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지근거리가 되어서…



“있지, 타키온…”

“…으음? 뭐 하나, 손 안 잡고.”

“…키스 해도 돼?”

“… 여기서?”

“… 안 돼?”

“… 키스 같은 걸 하고 싶다면, 제대로 젖은 몸이라도 닦고 나서 하게나.”



… 체. 아쉬움을 숨기지 못하고 고개를 치우고 물러서면 정말이지 어리광쟁이군, 그렇게나 내가 좋나? 라 물으며 끝이 젖은 꼬리를 가볍게 살랑이는 채로, 여전히 내민 손을 거두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타키온을 올려다본다. 숨이 닿는 거리는 멀어졌음에도 머리 위로 비가 떨어지지 않아, 나는 여전히 그것을 너와 숨을 나누는 공간이라 착각하고… 빗소리는 여전히 멀고, 내민 손은 추운 몸에 너무나 따듯한 온기가 되어줄 것 같고… 무엇보다, 이제는 내가 왜 빗물이 될 수 없는지, 흘러갈 수 없는지 기억해 냈기에… 나는 그제야 네 손을 잡고 일어난다. 신발은 푹 젖어 발걸음을 뗄 때마다 빗물이 짜여 나오고, 철벅거리는 소리가 나지만… 나는 너와 마주 보며 실 없이 웃는다.

너도 웃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난 그렇게 타키온에게 에스코트받아, 학원으로 돌아왔다.



-



“그러니까 선배!! 제가 말했죠, 수도가 끊겼어도 어떤 미친 사람이 비로 샤워를 해요!! 그리고 누가 빗속에서 뛰어요!! 우마무스메도 아닌데 그러면 폐렴 걸린다 폐렴??”

“아니 수도 안 끊겼다니까!! 사람을 왜 거지로 만들어!! 애초에 난 그냥 비를 맞고 싶어서 멋대로 뛰쳐나갔을 뿐이야…”

“하아… 진짜 태클 걸고 싶은 건 많은데 일단 그냥 오늘은 몸 따뜻하게 하고 타키온이 먹이는 거 다 먹고 그냥 푹 자세요… 이사장님이 소식 듣고 ‘경악! 트레센 학원의 트레이너들이 그 정도로 업무 스트레스에 이상행동을!’이라면서 단체로 휴가권 뿌린다는 거 타즈나 씨가 뜯어말린다고 고생 좀 한 거 같으니까 나중에 제대로 사과하시고요…”

“미안하다니까… 알겠어. 고마워 엔젤.”

“… 고마워하는 건 선배 데리러 직접 나간 담당한테 하세요. …그럼 전 전해줄 서류도 다 드렸으니, 이만…”

한숨을 푹 쉬고 문 틈새로 사라지는 크고 흰 우마무스메를 보며 세츠나는 따듯하게 데워진 채 머리를 덮고 있는 수건과 제 몸을 꽁꽁 감싸고 있는 온갖 종류의 담요와 겨울 이불, 그리고 평소보다 분명 배는 높게 작동하고 있는 듯한 난방이 켜진 방의 훈훈함을 실감하며 잠시 땀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온기를 만끽하고 있자면, 두 개의 머그잔을 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가와 옆자리에 걸터앉은 담당은 머그잔에 담긴, 김이 모락모락 나는… … 정체불명의 형광 녹색 액체를 내민다.



“… 여기서는 보통 핫밀크라던가 코코아라던가 홍차라던가 이래저래 있지 않아? 아니면 적어도 감기 예방에 도움이 되는 차라던가…”

“에에-?! 그런 효과도 미미한 방법을 굳이 고집하는 겐가, 모르모트 군?! 당연히 내가 직접 배합한 이번 샘플이 감기 예방에 배는 도움이 되는 건 당연하잖나?!”

“아니, 비주얼에서 이미 플라시보 효과 적으로 아웃이야. 절대로.”

“에에-!!”



꼬리를 바짝 세우며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어놓고는, 이내 그걸 그만두고 정말이지 마음을 몰라주는 모르모트로군! 기껏 열심히 건강식품을 만들어줘도 이렇게 거부하다니! 참, 보는 눈이 부족해! 라 연신 투덜거리는 제 담당의 ‘건강식품’은 탁자 위에 내려놓고, 불쑥 뒤통수를 손으로 감싸 숨이 닿을 거리까지 밀착해 이마를 마주 댄다. 그 와중에 타키온이 들고 있던 머그잔엔 밀크티가 담겨 있는 것이 보인다. 나중에 복수할 테다, 같은 실없는 생각은 저만치 치워두고, 미묘한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빠르게 본론을 입에 담는다.



“… 이제, 키스해도 돼?”

“어지간히 많이 기다렸나 보군… 애초에, 평소에는 이런 부탁 잘 안 하면서.”

“그치만, 비 오는 그 우산 속에서 널 보고 있자니까… 하고 싶어졌어. 해도 돼?”

“…무슨 대답을 할 진 알고 있으면서, 악취미군…”

“… 대답은, 타키온?”

“… 해도 된다네.”



눈치가 빠르다, 분위기를 잘 읽는다는 칭찬은 다행히 빈말이 아니었던지, 이젠 알 수 있다. 네가 눈을 유달리 열심히 피하는 것은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서라는 것 정도는 이제 잘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조금만 머릿속이 정리되면 자신의 생각도 알 수 있게 된다.

가볍게 뺨에 손을 올리고, 입술을 겹치며 생각한다.



내가 온전히 비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온통 너 때문이야.

네가 나를 살아가게 만들었기 때문이야.

네가 보여준 삶이 너무 찬란해서, 네가 보여준 삶이 너무 아름다워서… 만일 네가 달리기를 멈추더라도, 나는 이렇게나 세상이 아름답고 즐거운 것이라 믿으며, 달려 나갈 수 있을 거 같아서…

내가 비가 되고 싶다고, 온전히 소망하지 못한 이유는 날 기다릴 네가 있기 때문이라고.

… 빗소리는 많은 것을 숨겨준다.

달뜬 호흡도, 체액이 오가는 소리도, 두 사람분의 목소리도.

'🏇💤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키나 연성/선물/커미션  (0) 2025.03.04
Bullet for your head  (0) 2024.12.03
'최강' 의 무게  (0) 2024.11.24
따라갈 수 없는 것, 따라갈 수 있는 것  (0) 2024.11.17
목 위에 담을 수 있는 것  (0) 2024.09.11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