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짝이고 있었다.
찬란했다. 잿빛 세상에 화려한 색채가 깃든다. 모든 것이 너로부터 시작되었다. 커다란 붓을 보는 느낌으로, 세상이 시시각각 덧칠해져 나간다. 아름답다, 고 생각했다. 한 번도 보지 않았던 세상이 보인다. 잔디가 흔들린다, 햇빛이 눈을 찌른다. 석양빛이 세상을 붉게 물들인다. 아니, 그것보다 좀 더- 처절한. 눈앞이 반짝거리고, 아름다우며, 숨을 죽이게 되고…
아, 그때 깨달았다.
… 이것은,
살아있다, 는 감각이구나.
살아 숨 쉰다는 자각은, 보통 이런 자극들을 동반하는 것들이구나.
…아아, 그게 뭐야. 치사하잖아, 이런 거.
너무해, 너무하다고. 정말 너무하네, 이런 거.
사람들은, 살아있으면서, 줄곧 이런 자극들을 맛봐온 거구나.
아아, 정말 너무해, 너무한걸…
… 이렇게나 살아있다는 게 멋진 일이라는 걸 아무도 알려주지 않다니, 너무한걸.
하마타면 이런 것도 모르고, 죽어버릴 뻔했잖아!
…응, 정말 너무하다.
모든 색채의 중심에 네가 있었다. 거대한 타원형의 코스를 달려, 이내 내 코 앞까지 스친다. 바람이 스치고, 잔디가 흔들리고, … 너의 눈빛이 일순간 닿아서…
… 나는 고작 네 눈빛 하나로, 삶을 실감했다.
살아가고 있었다. 살아간다고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살갗 아래로 뜨거운 피가 흘렀다. 심장이 마구잡이로 맥동했다. 머릿속이 저리다. 숨이 급하게 뛰기라도 한 것처럼 가빴다. 폐가 수축하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리라고 생각했다. 펜스에 긁혀 다리에 따끔한 자극이 일었다. 신발 한 짝이 벗겨지고 발에 잔디의 약간의 축축함과 까슬거리는 감각이 닿는다. 그런데도 아무런 생각이 없어진다. 호흡을 처음 배운 나는 조금이라도 산소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죽게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 비틀비틀, 비틀비틀… 갓 태어난 짐승처럼 살아가는 것이 익숙지 않아 어색한 발걸음을 떼었다.
언제나 삶과 동떨어져 있었다.
그저 폐로 호흡하는 유령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이들보다 한 발자국 공중에 떠서 걸었고, 나의 세상은 언제나 잿빛이었어.
… 유일하게 색이 있는 곳은 잔디가 깔린, 투지가 난무하는 그곳뿐.
나도 저곳에 있고 싶었어. 그러나 영원히 닿을 수 없겠지. 포기는 체념이 되고 체념은 우울을 낳았다. 나는 점점 우울을 쌓아 하늘 위로 올라갔다. 하늘 위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날 묶어둘 수 없다. 심지어 중력마저도 날 묶어둘 수 없었다. 나는 어느샌가 붕 뜨고 있었다. 그게 기꺼웠다. 그래서 우울을 쌓아 올라간 꼭대기에서 발을 내밀며 어떻게 할까 오래도록 고민했다. 추락하면 필시 나는 뭉개지겠지. 다시는 없을 비행을 하고 결국 하늘에 닿겠지. 지금의 모습으로는, 중력에 얽매인 이 모습으로는 영영 하늘에 닿을 수 없어.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그렇게 고민하다가,
저 아래, 아주 작은 점이.
세상을 색색으로 물들여서.
나는 땅으로 내려왔고,
항상 한 발짝 붕 떠있던 나는…
색을 만나 비로소 우울과 파랑이라는 색으로 정의되어,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아주 어린 시절 이후 처음이었다. 발을 디딘 땅은 너무 어색했다. 걸음 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영원히 한 발자국 붕 떠서 허공을 거닐던 사람에게는 너무 힘겨운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땅에 발을 딛는 것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었다. 행복하다면 행복했지.
나는 색의 근원에게 다가가서,
너에게 다가가서.
…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
거기 홍차 좀 주게. 타자 소리만이 이어지던 방에서 타키온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세츠나는 익숙한 듯 대답 대신 잔에 갓 내린 홍차를 따르고 거기에 각설탕 두 개를 넣어 가볍게 티스푼으로 저어 그녀의 손에 들려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타키온은 그것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입으로 가져갔다가, 가볍게 인상을 찌푸리고는 옆에서 기다리던 세츠나에게 잔을 돌려주며 볼을 부풀렸다.
“뭔~가. 설탕이 적지 않은가. 좀 더 넣어주게나~”
“… 안 돼, 설탕 조절 해야지… 애초에 매번 각설탕이 녹지 않을 정도의 단 홍차를 마시는 네가 이상한 거라고 생각 안 해…? 아무튼, 설탕은 두 개로 참아.”
“에-에!!!”
나의 뇌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라도 당분은 필수불가결- 그리 운을 띄우며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타키온을 세츠나는 있는 힘껏 무시했다. 타키온은 응석쟁이고,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은 그걸 어떻게 해서든 들어주고 싶어져 버리는 글러먹은 트레이너다. 그러나, 그걸 감안해도 그녀는 그 이전에 선수이니까. 한 번 넘어가면 계속 넘어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전에도 그런 식으로 설탕을 일곱 개나 넣어버렸었지. 다시는 하지 말아야 할 실수야… 그리 생각하면서 새 홍차를 가져오겠다는 명목으로 그녀의 어리광을 들어줄 생각이 전혀 없음을 간접적으로 표명하자, 그 반응에 더는 포기한 건지 이내 푹 한숨을 내쉰 타키온은 잔을 내려놓고 다시 눈앞 화면에 시선을 집중했다.
세츠나는 오늘도 실험과 타키온의 자료 찾기로 엉망이 된 이과준비실을 치우며 타키온의 옆얼굴에 시선을 던졌다. 집중하고 있는 그녀에겐 묘한 감각이 있다. 마성이라고나 할까, 시선을 잡아끄는 듯한. 세츠나는 그것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기꺼웠다. 그런 상태의 그녀는 해괴망측한 약을 먹이지도 않고 묘한 카리스마라던가, 그런 것이 있어서 보기에 꽤 좋은 것도 있지만…그런 이유들은 그저 따위로 만들어버릴 것 같은 더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세츠나는 그것을 설명할 단어를 찾지 못했다. 이럴 때만큼은 어휘력이 야속하단 말이지. 스스로에게 원망을 던져봐야 학창 시절 그런 쪽의 공부를 소홀히 한 것도 아닌데 이런 모습이니, 이것은 그저 태생인가 보다, 하고 체념하기로 한 지 오래라 그다지 슬픔이 길어지진 않았다.
‘이번 세대에는 역시 이 아이가 최강이네요- 기대가 큽니다!’
‘저도요! 아무래도 이번 세대에는 역시 최강이-’
잠시간 이어지던 정적은 이내 화면에서 나오는 캐스터의 발언에 무참히 깨졌다. 최강, 이라는 단어가 입 안에 들어와 계속 어딘가 간질거리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최강, 이라.
최강. 그것은 그저 강하다는 정도로 설명할 수 없는 힘, 그리고 고작 ‘강하다’ 정도로는 도달할 수 없는 아득히 높은 장소.
수천, 수만의 꿈이 모이는 트윙클 시리즈에서 이기는 것만을 생각하며 눈을 빛내고 이를 악무는 상대들을 모두 꺾어내고서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절대의 경지.
…그리고 그것은 결단코 쉬운 것이 아니다.
“코튼, 로즈! 얼른 따라와! 너희, 지금 엄청 뒤처지고 있다고?”
“자, 잠시만…! 델타 선배, 저, 더는 스테미너가…”
“델타 씨는, 진짜 스테미너 엄청나네요… 천성적으로 스테이어 아니에요? 무서울 지경인데…아하하.”
창 밖으로 왁자지껄, 우마무스메들이 연습에 열중하는 소리가 들린다. …트레센 학원은 레이스를 꿈으로 하는 아이들 중에서도 특출 난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이 입학하는 곳. 그리고 그곳에서 트윙클 시리즈에 몸을 던지는 아이들은 더욱이 레이스에 대한 열정과 재능이 압도적인 경우가 많고, 그런 괴물들이…득시글거리는 곳이, G1. 그곳에서 영광을 빛내는 명예는…1%도 되지 않는 극 소수에게만 돌아가는.
자신이 그런 아이들을 서포트하는 위치라고는 하나, 레이스라는 건…기괴한 구조다. 절대로 하지 말라 말하고 싶을 정도로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그리고 그것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자신의 한 때를 완전연소하여 그곳에 몸을 던지는 아이들은 많다.
달리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으니까. 달리고 싶으니까. 달리는 것이 좋으니까. 달리는 것이… 그녀들의 본능이니까.
인간인 나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대강 가늠해 볼 수는 있다. 인간이라는 이유로 달릴 수 없었던 나도 평생 삶에서 겉돌았는데,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 없는 우마무스메는…
필시 내가 그동안 겪었던 모든 것을 ‘따위’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고통스러우리라는 것을.
그렇기에, 최강이란 칭호에는 강하다는 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힘이 있다.
그 모든 눈물을, 고통을, 강함을 헤치고 나아가서…한 번 붙들기도 힘겨운 영광을 반드시 잡아낸다는 각오와 힘의 결정체만이… 비로소 ‘최강’이란 영광을 내비칠 수 있는 거니까.
“모르모트 군.”
차분한 목소리, 어쩌면 무신경한 목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무어라 말한 것 같긴 한데 듣지 못했다. 당황해 응?이라 얼빠진 표정으로 되묻자 한숨을 쉬며 타키온은 홍차를 한 모금 더 들이키고는, 티스푼으로 아직도 덜 녹은 각설탕 덩어리를 휘적거리다가 재차 물었다.
“자네에게 ‘최강’은 누군가?”
… 뜬금없는 질문이었고, 터무니없을 정도로 쉬운 질문이었다. 나는 그것에 되물어보거나, 진의를 파악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타키온은 여전히 내 쪽을 보지 않고 화면에만 시선을 고정했고, 창문 너머로는 넘실거리는 커튼과 햇살, 왁자지껄 연습에 열중하는 우마무스메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더 생각하지 않고 목 뒤로 손을 가져갔다. 찰칵, 금속 재질의 고정구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손 안으로 작은 은색 물체가 낙하해 손 위로 떨어졌다. 흔히 로켓 펜던트라 부르는, 사진 같은 것을 넣을 수 있는 은색의 매끈한 펜던트 두 개. 장식 하나 없고 화려하지도 못하다. 남들은 왜 그런 것을 차고 다니느냐고 의문 섞인 시선을 보낸 적도 있다.
그러나, 부모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면 금세 말수가 적어지고 나에게 미안해한다. 부모님은 건강하게 본가에서 지내고 계신다, 라 덧붙이면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뭐, 거짓은 말하지 않았다.
-… 네가 정말 그 마음을 채우는 날이 온다면 이 목걸이에 담고 싶어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것이 있을 거란다. 분명해. 그러니 부디 이 목걸이를 차고 있으렴…-
라는 부모님의 말이 공감이 가게 된 것은 꽤나 최근의 일이다. 한 번도 믿지 않았지만, 그런 순간은 정말로 있었다. 채우고 싶어 견딜 수가 없는 순간이 있었다. 펜던트 두 개를 모두 열었다. 하나에는 햇살 아래에서 ‘사츠키상’의 우승 깃발을 두르고 웃는 타키온이 있다. 하나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제 이것이 필시 채워질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펜던트를 쥔 손을 펼쳐 앞으로 내민다. 그리고 나지막이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그녀가, 그 눈동자에, 나를 담는다.
나는 항상 하려고 했고, 항상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하게 될 말을 뱉는다.
“나는, 네 달리기가 좋아. 네가 달리는 모습이 좋아. 너는 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멋진 달리기를 해내고 있어. 내 최강은 너야, 타키온. 내 세상의 너는… 그 어느 순간, 어느 찰나라도… 최강이 아닌 적이 없었어.”
저도 모르게 멋쩍어서 웃음이 나온다. 눈을 감고 이 웃음을 즐긴다. 약간은 너를 마주하기 민망한 면도 있었다. 또각, 또박. 걸음 소리가 들린다 싶으면, 손에 들려있던 것에 사람의 체온과 체중이 닿는 감각이 선명하다. 잘그락. 손에 들었던 펜던트를 한번 만지작거린 타키온이 이내 미소와 함께 등을 돌려 다시 제게서 멀어져 갔다.
“으음, 그런가. … 그런가. 음음, 좋아, 좋은 모르모트의 자세로군. … 자아! 모르모트 군. 그보다 어서 실험을 시작하지, 실험! 오늘도 연구해야 할 것이 산더미라네!”
“…응, 알겠어.”
나는 다시 손에 든 펜던트를 목으로 가져간다. 찰칵, 목걸이가 다시 채워지는 경쾌한 소리가 들린다. 어느샌가 꺼진 특집 방송은 다음 영상 추천 화면만을 띄우고 있고, 시끌벅적하던 바깥의 소리는 커튼을 쳐 간혹 들어오는 바람에 실려오는 것이 아니면, 더는 큰 소리가 아니게 된다.
세계는 오늘도 맥동한다.
내가 살아있던, 죽어 있던. 세계는 오늘도 돌아간다.
그러나, 나는 이제 살아있다는 확신이 있다. 바닥을 딛고 자전과 공전에 영향을 받는다는 체감이 있다.
… 내 세상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호흡하고 있다.
나는 그것이 못내 즐거워서, 웃음을 띄우고 만다.
문득 부모님이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 언제라도 네가 원하는 것을 그 안에 담을 수 있게... 그때가 오면, 우리가 왜 펜던트를 두 개 준비했는지 알게 될 거란다…-
네, 엄마. 아빠. 저는 이제 알아버렸어요.
살아있는 사람의 시선에서 세상을 볼 수 있게 됐어요.
세상은 이렇게나 찬란했군요.
이렇게나 담고 싶은 것이 많았군요.
저는 고르고 또 골랐지만 아직도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을 담지 못했어요.
…아아, 그치만…
이제, 곧 담을 수 있게 될 거 같아요.
그렇다는 확신이 있어요.
항상 감사해요. 이 목걸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 다음에 한번 찾아뵐게요.
… 저, 지금 최강으로 행복해요. 꼭 보여드리고 싶어요.
세츠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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